바다 밑에 잠긴 시간의 색, 제이허빈 '녹슨 닻' 만년필 잉크


# 이건 핑크인가, 벽돌색인가?
제이허빈 라인업 중에서도 워낙 유명한 색상이라 고민 끝에 드디어 구매했습니다. 첫인상은 생각보다 흐릿했지만, 머들러로 테스트하는 순간 왜 이름이 '녹슨 닻'인지 단번에 이해가 가더군요. 화사한 핑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, 이름 그대로 수십 년간 바닷바람에 산화된 쇠붙이에서 배어 나온 듯 오묘한 '빈티지 핑크' 그 자체입니다. 많은 유저 사이에서 "말린 꽃잎을 짓이겨 놓은 색" 혹은 "오래된 편지봉투에서 날 법한 색"이라 평가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. 화려하지는 않아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서정적인 무드가 가득한 색상입니다.


# 빈티지한 핑크에 오렌지 한 방울
토모에리버 종이에 테스트해 보았는데, 실제의 오묘한 색감이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아쉽네요. 제가 가진 잉크 중 빈티지 핑크의 대명사인 '글입다 화이트 래빗'과 비교한 사진을 참고해 주세요. 잉크를 짙게 바르면 주황빛이 조금 더 올라오는 느낌입니다. 제이허빈 특유의 묽은 질감이 살아있으며, 살구색과 톤 다운된 핑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발색을 보여줍니다.






# 펠리칸 M200 EF닙
전 잉크 흐름이 좋은 펠리칸 M200 EF닙에 넣어 시필했습니다.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지만, 개인적으로 연한 색상을 선호해서인지 대부분의 노트에서 농담이 잘 표현되어 만족스러웠습니다. 만년필로 썼을 때의 색상이 딥펜과 거의 흡사하게 구현되는데, 딱 '빈티지한 살구빛'이라고 정의하고 싶네요.

펠리칸 M200이 워낙 흐름이 풍부한 펜이라 그런지, 박하다는 평이 무색할 만큼 딥펜 못지않은 색감을 잘 뽑아내 주었습니다. '녹슨 닻'은 흐름이 다소 박한 편이라 잉크를 넉넉하게 뿜어주는 만년필과 조합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. 제이허빈 특유의 빈티지한 컬러감에 반해 앞으로도 자주 찾게 될 것 같네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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